인공지능(AI)이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로봇이 직접 실험을 수행하는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oratory·SDL)’이 차세대 연구개발(R&D)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재·바이오·반도체·배터리처럼 반복적인 실험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연구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한국미래기술교육연구원은 오는 9월 15일 서울 여의도 FKI 컨퍼런스센터에서 ‘AI·로봇 기반 R&D 자동화와 자율실험실 구축 전략’ 세미나를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AI를 활용한 후보물질 탐색부터 로봇 기반 실험 자동화, 실험 결과 분석과 다음 조건 결정까지 연구 과정 전체를 연결하는 기술과 실제 산업 적용 사례를 다룬다.
AI→로봇→데이터→다시 AI…실험도 ‘폐루프’로
자율실험실의 핵심은 단순히 사람이 하던 실험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AI가 기존 연구 데이터 등을 분석해 유망한 실험 조건을 찾아내면 자동화 장비와 로봇이 해당 실험을 수행한다. 여기서 나온 결과는 다시 AI로 전달된다. AI는 결과를 분석한 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다음 실험 조건을 결정한다.
이처럼 ‘실험 설계→수행→분석→다음 실험 설계’ 과정이 반복되는 구조를 폐루프(Closed-loop) 방식이라고 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연구자가 직접 가설을 세우고 조건을 변경하면서 수많은 실험을 반복해야 했다. 자율실험실에서는 AI가 방대한 후보군 가운데 가능성이 높은 영역을 먼저 탐색하고 로봇이 반복 실험을 수행하면서 탐색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특히 수많은 조성이나 공정조건을 비교해야 하는 신소재·화학 분야와 후보물질 탐색이 필요한 신약개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공정 변수와 소재 조합이 복잡한 산업에서도 연구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관련 시장 역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은 실험실 자동화 시장이 2030년까지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AI 기반 신약개발 시장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25%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와 소재기업뿐 아니라 국가 연구기관들이 AI 기반 후보물질 탐색과 자동화 실험 플랫폼 구축에 뛰어드는 이유다.
신소재부터 바이오까지…산업별 구축 사례 공유
이번 세미나에서도 자율실험실을 실제 연구현장에 적용하는 방법이 집중적으로 논의된다.
먼저 AI를 이용해 수많은 후보물질과 후보소재 가운데 가능성이 높은 대상을 선별하는 스크리닝 기술과 폐루프 방식의 실험 최적화 전략을 다룬다. AI가 연구 과정에 직접 활용될 수 있도록 기존 연구장비를 자동화하고 데이터와 장비를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 방안도 소개된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ADC(항체약물접합체) 제조 자율랩 구축과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 최적화 사례를 살펴본다. AI와 의료장비를 연동하는 자동화 기술과 기존 연구실을 자동화 실험실로 전환하는 방법도 다룰 예정이다.
신소재 분야에서는 AI 자율실험실을 활용한 소재 개발 전략과 공정 시스템 구축, 운영체계와 AI 최적화 기술 등이 소개된다.
자율실험실이 확산되면 연구자의 역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업무는 자동화하고, 연구자는 연구 방향을 설정하거나 결과를 해석하는 고부가가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율실험실을 구현하려면 AI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험장비와 로봇을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기술부터 서로 다른 장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AI가 분석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시스템까지 필요하다.
결국 경쟁력은 ‘좋은 AI 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 AI와 로봇, 연구장비,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하느냐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미래기술교육연구원 측은 자율실험실이 단순한 실험 자동화를 넘어 연구개발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공정 최적화까지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업의 R&D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보조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다음 실험을 결정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자율실험실이 산업현장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앞으로 기업의 기술 경쟁력은 연구인력의 규모뿐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실험하고 학습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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