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이를 탑재한 완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안을 다시 검토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미 투자 전략에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에는 관세를 감면하거나 일부 물량을 무관세로 허용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떤 생산능력까지 인정할지를 놓고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반도체뿐 아니라 노트북, 게임기, 데이터센터 서버 등 반도체가 들어간 완제품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핵심은 미국 현지 투자와 관세 혜택을 연계하는 구조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거나 기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기업에는 일정 수준의 관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현지 생산능력에 비례해 일부 수입 물량을 무관세로 인정하는 방식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미 앞서 첨단 반도체에 일부 관세를 부과하면서 주요 반도체 생산국과 투자·무역 협상을 진행한 뒤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단계적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 내 설비투자를 늘리는 기업에는 관세 부담을 상쇄해주는 방안도 함께 거론돼왔다.
한국 2000억달러 투자계획과 시기 겹쳐
이번 관세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의 대미 투자계획 발표 시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앞선 한미 협상에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방안을 제시했고, 이 가운데 조선 분야 1500억달러를 제외한 2000억달러의 구체적인 투자사업을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한미 양국은 당초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첫 투자사업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사업의 수익성과 자금 회수 방식, 국내 법적 절차,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놓고 세부 조율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반도체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면서 대미 투자 규모와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가 협상의 새로운 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국내에 구축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 내에서도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을 더 확대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 HBM 공장, 어디까지 ‘미국산’ 인정될까
관세안이 실제 시행될 경우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공장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4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 착공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HBM 등 AI용 메모리 제품의 후공정과 패키징을 담당할 예정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이 시설에서 생산되는 HBM 전체를 미국 내 생산능력으로 인정할지 여부다.
HBM 제조 과정은 D램 웨이퍼 생산과 적층, 패키징 등 여러 단계로 나뉜다. 웨이퍼를 한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에서는 패키징만 수행할 경우 미국이 전체 제품을 현지 생산으로 볼지, 미국에서 실제 이뤄지는 공정의 부가가치만 인정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인정 범위가 좁아지면 미국에 투자했더라도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일부 반도체에는 관세 부담이 남을 수 있다.
삼성전자도 상황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기존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일러에도 신규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다만 미국 공장의 중심은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쪽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현지 파운드리 투자를 한국에서 생산한 메모리 반도체의 관세 면제와 연계해 인정할지도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관세율보다 ‘면제 기준’이 더 중요
국내 반도체 업계 입장에서는 관세율 자체보다 면제 기준과 산정 방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미국 내 투자금액을 기준으로 혜택을 줄지, 실제 생산량을 기준으로 할지, 또는 공정별 부가가치를 따질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HBM과 첨단 메모리는 생산 공정이 여러 국가에 걸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원산지 기준만으로는 관세 혜택을 정하기 어렵다.
결국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은 단순한 수입 규제를 넘어 해외 기업의 현지 투자를 더 끌어내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있지만, 기존 투자가 어느 수준까지 관세 혜택으로 인정받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향후 한미 협상에서는 미국 내 투자 규모뿐 아니라 어떤 공정을 현지 생산으로 볼 것인지, 한국에서 생산된 메모리 반도체에 어느 정도까지 무관세 혜택을 적용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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