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외부 투자금을 유치했던 기업들이 약속한 상장 시한을 지키지 못하면서 수백억원대 자금 상환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프리IPO 단계에서 투자자에게 풋옵션이나 약정수익을 보장한 경우, 상장이 무산되면 기업이나 모회사가 원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들여 지분을 되사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BGF에코머티리얼즈는 최근 계열사 BGF에코솔루션 주식 80만주를 383억6000만원에 추가 취득하기로 했다. 투자자가 보유한 풋옵션을 행사한 데 따른 조치다.
BGF에코솔루션은 2021년 WWG자산운용과 메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300억원을 유치했다. 보통주에 200억원,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100억원이 투자됐다.
당시 계약에는 2026년 8월까지 IPO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가 보유 지분 전량에 대해 매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매입가격에는 연복리 5% 수준의 수익률이 적용됐다.
결국 5년 전 유치한 300억원은 상장 지연으로 인해 약 383억6000만원 규모의 현금 부담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투자자로부터 8000억원을 조달하면서 2026년 7월까지 IPO를 완료하기로 약정했다. 하지만 회계처리 이슈와 중복상장 규제 강화 등으로 일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SK㈜와 함께 투자자 지분을 약 1조500억원에 되사기로 했다.
약 4년 만에 원금보다 2500억원가량 많은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상장 시한 연장에도 추가 비용
아직 IPO 시한을 앞두고 있거나 연장을 협의 중인 기업들도 있다.
대동모빌리티는 2022년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와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 카카오모빌리티 등으로부터 1150억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2026년 상반기까지 상장을 완료하기로 했지만 계획한 시한을 넘기면서 투자자들과 계약 연장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투자자는 자금 회수를 선택하고, 상장 시한 연장에 동의하는 투자자에게는 향후 풋옵션 수익률을 기존 3%에서 6.85%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상장을 미루는 것만으로도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롯데이노베이트의 전기차 충전 자회사 이브이시스도 내년 초가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2022년 이브이시스를 인수한 뒤 스틱얼터너티브자산운용으로부터 400억원을 유치하면서 2027년 2월까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적격 IPO’를 완료하기로 했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투자자는 원금에 최소 3%의 내부수익률을 더한 가격으로 지분 매수를 요구할 수 있다.
실적이 기대 못 미치면 IPO도 어려워져
상장 지연의 배경에는 프리IPO 당시 기대했던 기업가치와 실제 실적 사이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BGF에코솔루션은 친환경·생분해 플라스틱 시장 성장을 기반으로 투자를 받았지만 매출은 2022년 213억원에서 2025년 102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대동모빌리티 역시 스마트 모빌리티와 전기스쿠터 사업을 성장동력으로 제시했지만 기대했던 외형 성장에는 미치지 못했다. 2025년 매출 목표는 5000억원 수준이 거론됐지만 실제 매출은 약 2470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익도 적자를 이어갔다.
이브이시스는 매출이 2022년 489억원에서 2025년 906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이 지속됐다. 적격 IPO를 성사시키려면 단순히 상장하는 것뿐 아니라 투자자가 요구하는 기업가치와 공모 조건까지 충족해야 한다.
프리IPO는 미래의 상장과 기업가치 상승을 전제로 자금을 미리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성장자금을 확보하고 투자자는 IPO 이후 지분 매각으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장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면 구조가 반대로 작용한다. 투자자에게 보장된 풋옵션과 약정수익이 기업의 현금 유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보호장치 더 적어
최근에는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이 확대되면서 개인투자자도 상장 전 기업에 접근하기 쉬워졌다.
문제는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사이의 보호장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기관은 프리IPO 계약 과정에서 풋옵션이나 최소수익률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 개인투자자에게 이런 권리가 제공되는 경우는 드물다.
IPO가 무산되면 기관은 계약에 따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반면 개인은 거래가 줄어든 비상장주식을 장기간 보유해야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는 ‘유명 기관이 투자했다’거나 ‘상장을 추진 중이다’라는 사실만으로 투자 안정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프리IPO 당시 기업가치와 현재 장외가격, 실제 실적과 수익성, 상장 절차 진행 상황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IPO는 투자 회수의 수단이지 반드시 예정대로 실현되는 결과는 아니다. 상장 실패가 기업에는 풋옵션 부담으로, 개인투자자에게는 장기간의 자금 묶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IPO 투자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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