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상향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출 급증이 전체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내수와 중소기업 경기는 아직 상대적으로 회복이 더딘 모습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지난 2월 전망치 1.8%에서 2.5%로 높인 데 이어 다시 큰 폭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불과 반년 사이 전망치가 1.7%포인트 올라갔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4월 1.9%로 제시했던 한국 성장률 전망을 7월 2.6%로 상향했다. 한국은행과 정부 역시 최근 경제 여건 개선을 반영해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성장률 전망이 빠르게 올라간 가장 큰 배경은 반도체 수출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성능 D램 등 AI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주요 공급자로 자리 잡으면서 수출 증가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7월 한국 전체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62.8% 증가했고 반도체 수출은 178.8% 늘었다. 8월 1~10일 수출액도 212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6억달러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반도체 증가분이 약 60억달러를 차지했다.
반도체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7월에는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도 전년보다 약 26% 증가했다. 자동차와 친환경차, 선박 등 주요 제조업의 수출도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수출 호황과 체감경기의 온도차
문제는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내수 현장에서 느끼는 경기는 그만큼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도체와 대형 수출 제조업은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건설업, 자영업 등에서는 여전히 경기 부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는 기준선인 100을 크게 밑돌고 있으며 건설투자도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지역경제와 내수 중소기업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져도 모든 가계와 산업이 같은 속도로 체감경기 개선을 경험하지 않는 이유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임금과 성과급, 협력업체 발주, 설비투자, 세수 등을 통해 다른 경제주체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고 산업별로 전달 속도에도 차이가 생긴다.
최근에는 내수에서도 일부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실질 소비지출이 증가하고 음식·숙박과 문화·오락 관련 소비도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서비스업 경기 회복을 돕는 요인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고 국내 카드 사용액도 증가했다.
관광객 소비는 호텔과 면세점뿐 아니라 음식점과 카페, 교통, 공연, 쇼핑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된다. K콘텐츠와 관광산업이 제조업 외의 새로운 외화 수입원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반도체 호황 이후 준비도 필요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에서 시작된 성장 효과가 다른 수출 제조업으로 확산되고, 소비와 서비스업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단계로 볼 수 있다.
다만 AI 투자와 반도체 수요가 현재 속도로 계속 증가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과거에도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온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따라서 현재의 반도체 호황을 단순한 단기 성장률 상승으로 끝내지 않고 다음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에서 진행되는 AI와 스마트 제조 혁신을 중소 제조기업으로 확대하고, 현장에 축적된 생산 데이터와 기술 경험을 AI와 결합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작업이 중요하다.
관광과 K콘텐츠 등 서비스 산업에서도 해외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수출 모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결국 3.5%라는 성장률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의 효과가 얼마나 넓게 확산되느냐다. 반도체가 경제 전체를 끌어올리는 동안 내수와 중소기업, 서비스업까지 성장의 온기가 전달된다면 최근의 수출 호황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