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산 저가 철강의 밀어내기 수출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세계 철강 공급과잉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생산설비를 확충하는 사이 중국의 생산능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공급 부담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중국의 과잉생산과 수출 확대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미국은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와 수출 중심 경제구조가 글로벌 시장의 불균형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철강은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철강 소비가 줄었지만, 이미 구축된 대규모 생산설비를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남는 물량이 해외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철강 수출은 전년보다 6.2% 감소했지만 중국의 수출량은 오히려 13.8% 증가한 1억3120만t을 기록했다. 중국이 글로벌 철강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19%에서 지난해 41%까지 뛰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이 대거 유입되면서 각국 철강업체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에너지비용,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설비투자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 제품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 한국 등은 반덤핑 관세와 수입쿼터 등 각종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철강 생산시설을 늘리거나 기존 공장을 현대화하는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공급과잉 막으려다 생산능력 더 늘어
문제는 이러한 대응이 세계 철강 생산능력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기존 생산설비를 크게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국가들이 새로운 생산시설을 추가하면서 세계 전체의 공급능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을 막기 위한 보호무역이 각 지역의 신규 설비투자를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공급과잉을 심화시키는 셈이다.
OECD는 세계 철강 초과 생산능력이 2025년 약 6억4000만t에서 2028년에는 7억45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26년부터 2028년 사이 새롭게 추가되는 생산능력은 최대 1억39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같은 기간 세계 철강 수요 증가분은 약 3400만t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생산능력이 수요 증가보다 약 4배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다.
공급이 넘치면 일반적으로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지만 최근 주요 시장에서는 오히려 반대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미국의 열연강판과 철근 가격은 중국 가격의 두 배를 넘어섰고, 유럽 가격도 중국보다 약 50%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관세와 수입 제한이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유입을 줄이면서 자국 철강업체의 가격 방어에는 도움이 됐지만, 철강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제조기업들의 비용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자동차·조선·건설까지 비용 부담 확대
철강 가격 상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기계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준다. 철강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가 오히려 철강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제조원가를 높이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수출시장 경쟁도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산 철강이 높은 관세가 적용되는 시장을 피해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로 이동하거나 제3국에서 가공된 뒤 다시 수출되는 사례가 늘면서 단순한 관세 정책만으로 물량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글로벌 철강시장에서는 중국의 과잉생산과 각국의 보호무역, 신규 설비투자가 서로 맞물리며 공급과잉을 확대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OECD 역시 무역규제가 단기적으로 특정 국가의 철강업체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과잉생산의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보조금과 비시장적 지원을 줄이고 주요 생산국들이 함께 설비 과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철강시장의 핵심 변수는 중국이 실제 생산능력 감축에 나설지 여부다. 중국의 공급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의 신규 투자가 계속된다면 2028년까지 예상되는 7억4500만t 규모의 초과 생산능력은 글로벌 철강업계의 장기적인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