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이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당초 150억달러 규모로 계획한 유상증자에 예상보다 많은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최대 200억달러 수준까지 조달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인텔이 대규모 주식 공모에 나선 것은 1971년 상장 이후 처음이다.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설비투자와 첨단공정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해 반도체 시장에서 재도약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인텔은 10일(현지시간) 150억달러, 우리 돈 약 21조2000억원 규모의 보통주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회사가 이번 증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빠르게 증가하는 AI 인프라 투자가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AI 가속기뿐 아니라 전용 반도체, 첨단 패키징, 웨이퍼 생산 등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특히 피지컬 AI와 전용 AI 칩, 첨단 패키징, 외부 웨이퍼 생산 분야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I 투자 확대…연간 CapEx도 200억달러로
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AI 인프라를 비롯한 자본적지출(CapEx)과 운전자본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인텔은 앞서 올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연간 CapEx 전망치를 200억달러까지 높였다. 제품 경쟁력 강화와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위해 반도체 제조장비와 클린룸, 기판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미세공정이 발전할수록 생산라인 구축에 필요한 장비 가격이 상승하고 연구개발 비용도 증가한다. 특히 최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하나의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인텔은 최근 선단공정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자체 프로세서를 생산하는 종합반도체기업에서 벗어나 외부 고객의 반도체까지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 확대는 이런 전략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AI 가속기와 주문형반도체(ASIC) 수요가 증가할수록 첨단공정과 패키징 생산능력을 보유한 파운드리 기업의 역할도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확보한 자금을 생산능력 확충과 공정 경쟁력 강화에 투입해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립부 탄 CEO 체제, 재무구조 개선도 병행
이번 증자는 립부 탄 CEO 취임 이후 추진하고 있는 재무구조 개선 작업과도 연결돼 있다.
인텔은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속하면서도 재무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체 현금만으로 모든 투자를 감당하기보다는 증자를 통해 자본을 확충하면 부채 부담을 억제하면서 필요한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투자적격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신용등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향후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추가 자금을 조달할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결국 이번 증자는 단순한 자금 확보를 넘어 재무구조를 안정시키면서 AI와 파운드리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시장 반응도 예상보다 뜨거운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인텔의 주식 발행에는 1000억달러가 넘는 투자 수요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획했던 150억달러의 6배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이에 따라 인텔은 실제 증자 규모를 약 200억달러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초과배정옵션까지 행사할 경우 최종 조달액이 200억달러를 상당폭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공모가격은 주당 95달러 안팎이 거론되고 있지만 최종 가격과 발행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공모에는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등이 주관사로 참여한다.
투자자는 ‘희석 우려’…주가 4.1% 하락
다만 대규모 증자가 기존 주주에게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주식을 대량으로 발행하면 전체 발행주식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기존 주주가 보유한 지분의 상대적 가치가 낮아지는 희석 효과가 발생한다. 증자로 확보한 자금이 향후 충분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증자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인텔 주가는 10일 뉴욕증시에서 4.1% 하락한 97.5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올해 전체 흐름을 보면 상황은 다르다. 인텔 주가는 AI 반도체 시장 성장 기대와 재무구조 개선 전망 등에 힘입어 연초 이후 약 164% 상승했다.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지분 희석 부담과 중장기 성장 가능성을 동시에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관건은 조달한 자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다.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더라도 선단공정의 수율과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거나 외부 파운드리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 부담이 다시 재무적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반대로 AI 반도체 수요 증가를 실제 파운드리 수주와 제품 매출로 연결한다면 이번 증자는 인텔이 경쟁력을 회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21조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 조달은 인텔이 AI 시대의 반도체 경쟁에서 다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증자 규모 자체보다 인텔이 확보한 자금을 첨단공정과 AI 사업의 실질적인 성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수 있을지에 모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