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증시에서는 ‘코스피 1만’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허황된 목표가 아니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과 반도체 업황 회복, 기업가치 제고 정책, 외국인 투자 확대가 동시에 이어질 경우 오랫동안 이어진 한국 증시의 저평가 구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하지만 최근 시장 흐름은 이러한 낙관론에 제동을 걸었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 금리 전망의 불확실성, 미·중 갈등, 글로벌 기술주의 조정, 반도체 업황 정점 논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까지 겹치면서 증시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문제는 외부 악재만이 아니다. 국내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진된 일부 정책이 오히려 단기 투기 수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상품이다. 해외 주식과 해외 ETF로 이동하는 투자자금을 국내로 유도하고 투자 선택지를 확대한다는 취지였지만, 변동성이 높은 대형 반도체 종목에 레버리지 구조까지 결합하면서 시장의 상승과 하락 폭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레버리지 상품은 매일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보유 비중을 조정한다.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면 추가 매수하고 하락하면 비중을 줄이는 방식이다. 평상시에는 이러한 구조가 큰 문제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급락장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레버리지 상품의 리밸런싱 매도와 신용거래 반대매매가 동시에 발생하면 매도 압력이 짧은 시간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투자자의 신용융자 비중이 높은 시장에서는 작은 충격이 예상보다 큰 하락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투자자 자격 요건을 강화하거나 금융교육 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 변동성이 일정 수준 이상 확대될 경우 레버리지 상품의 신규 설정이나 매수를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용융자를 이용해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는 방식 역시 점검 대상이다. 투자자가 대출을 활용한 상태에서 다시 레버리지 상품을 매수하면 실제 위험 노출이 크게 확대되는 이른바 ‘이중 레버리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 거래 활성화보다 시장의 기초 체력을 높이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기업의 실적 성장과 지배구조 개선, 일관성 있는 주주환원 정책이 이어져야 하고 장기 투자자가 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일정 기간 이상 주식을 보유하는 투자자에게 세제상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연기금·퇴직연금 등 장기 자금이 국내 우량기업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래량 자체가 아니라 자금의 성격이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금이 반복적으로 유입·이탈하는 시장보다 장기간 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자금이 축적되는 시장이 훨씬 안정적이다.
최근 증시 조정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의 성장 동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AI 산업 확대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확보한 경쟁력도 여전히 유효하다. SK하이닉스의 HBM 사업과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 흐름은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반도체 산업에 실질적인 수요를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주가 하락 역시 AI 산업 자체의 성장성이 훼손됐다기보다 단기간 시장 기대가 과도하게 높아진 상황에서 투자 심리와 수급이 동시에 흔들린 결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메모리와 AI 반도체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최첨단 반도체 공정의 수율, HBM 대량 생산 경험, 글로벌 고객사와의 협력 관계, 반도체 장비와 설계 생태계 등에서는 아직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선도 기업과 일정한 격차가 존재한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와 기술 수출 규제 역시 중국 기업의 글로벌 확장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추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단기간에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체할 수준에 도달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향후 코스피가 다시 장기 상승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과 투자 문화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목표로 하는 정책보다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신뢰를 높이고 장기 자금이 시장에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투자자 역시 하루 단위의 지수 움직임보다 AI 산업의 성장세가 지속되는지, 국내 기업들의 이익 창출 능력이 유지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급락장은 투자자에게 큰 공포를 준다. 그러나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공포에 매도하고 상승 이후 뒤늦게 다시 매수하는 행동을 반복하면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결국 시장의 단기 변동성보다 기업의 펀더멘털과 산업의 장기 성장성을 판단하는 투자 원칙이 중요하다. 한국 증시가 다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단기적인 주가 부양보다 시장의 신뢰와 장기 투자 기반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피해자 1인당 1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정신적 피해를 인정한 첫 조정 사례로, 쿠팡이 이를 수용할지 관심이 모인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소비자 50명이 신청한 집단분쟁조정 사건을 심의한 결과, 쿠팡에 신청인 1인당 현금 10만원 또는 쿠팡캐시 1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유출된 개인정보의 민감성과 실제 피해 가능성을 주요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이름과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뿐 아니라 배송지 정보와 공동현관 비밀번호, 주문내역 등 사생활과 밀접한 정보까지 외부에 노출됐다는 점을 고려했다.
또 해커가 약 7개월 동안 시스템에 무단 접근해 정보를 빼낸 뒤 일부 이용자에게 직접 안내 메일을 보내는 등 실제 침해 행위가 확인된 점도 반영됐다. 위원회는 개인정보 유출로 소비자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배상액은 기존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법원 판례와 유출 정보의 민감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됐다. 아울러 쿠팡이 앞서 제시했던 자체 보상안의 실효성을 확인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
쿠팡은 올해 초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 명목으로 최대 5만원 상당의 할인쿠폰을 지급한 바 있다. 그러나 현금이 아닌 자사 서비스 이용권 형태여서 실질적인 보상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조정안은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하되 신청인이 원할 경우 같은 금액의 쿠팡캐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양측은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안에 수락 여부를 밝혀야 하며, 별도 의사 표시가 없으면 수락한 것으로 간주된다. 조정이 성립되면 법원의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관심은 이번 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도 보상이 확대될지 여부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확인한 전체 유출 규모는 약 3756만건에 이른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쿠팡이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동일한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약 전체 피해자로 보상 범위가 확대된다면 총 배상 규모는 약 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쿠팡은 조정 결정 내용을 검토한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